𝘾𝙊𝙎𝙈𝙊𝙎 - 방에 대하여

여기에서의 삶을 이어나갈 미래 계획도 하나쯤은 세워놓는 편이 좋겠어요. (반쯤 농담. 근데 반만 농담이다.)
(빤히 본다. 정말?)
왜 그렇게 길 잃은 강아지처럼 쳐다보시죠.
여기 영원히 갇힐 생각을 하니 너무 우울해져서...
우울할 것 있나요. 어디서든 적응 잘 하시면서.
그건 어디까지나 영원히 갇히지 않는다는 전제하야! 사실 죽는 것보다는 나은 처우지만, 갇히는 건 싫어!
이 안에도 나름 세계가 있다는 걸 감안하면, '바깥'을 돌아다니는 것만큼의 자유를 착각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자유고 뭐고, 대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여기 없잖아…….
흠. 나쁜 말 하나 해도 되나요?
(어떤 류의 대답이 올지 얼추 예상이 간다는 얼굴. 그러나 마지못해…….) 해 봐.
대부분의 사람은 대체 가능하답니다. 노력만 하면. (으쓱.)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자동응답기 같은 대답.) 내 주변 사람은 안돼! 아빠를 포함해서 전부. 너, 너, ㄴ…… 설마 나도 대체 가능할 거라고 생각 중? 나보다 더 재, 재밌거나… 조금 더 *사악해서* 네 니즈에 맞는……. (그 전에 <굿가이 라이오넬 가설>을 세운 본인이 말하기엔 민망한 지 말을 더듬다가 턱을 치켜세우며 곧 자신감 있는 투로) 나랑 아무리 똑같은 녀석이 와도 날 대체할 순 없을걸?
그러니까, *대부분*. 그리고 관은 전부 1인용이죠. 위로가 되지요? (나쁜 농담.)
그리고 난 그 *대부분*에 만족하지 않는다구…. (가만히 보다가 라이오넬의 귓불을 확 잡아 당겨버린다.) 이…… 못된 농담!!!
세상 천지 어디에서나 좋아할 만한 것 잘 찾아내시는 초능력의 소유자면서 왜 이러시는... 아야야야야야야야야야. (엄청나게 구구절절한 엄살.) 어째서 저의 필사의 노력이 통하지 않는 건지. 역시 독방에 가둔 다음 3일 뒤에 내보내 줘야겠어요. 그러면 여기에도 감사를 느끼시겠죠? (진담인지 농담인지 모르겠음)
쓸데없이 엄살은 심하다니깐? (눈썹 끝을 내리며 손을 놓는다.) 너어어어……. (도끼눈) 내가 갖고 있는 모든 힘을 끌어당겨서 네 *조그마한* 서판을 망가뜨릴 거야. (도끼눈을 금세 푼다.) 우리 둘 다 젖은 미역인 상태로 방에서 나오는 건 꼴사나울 거고. (정적) 진짜로 그럴 건 아니지…?
(어쩔까 고민하는 수상한 얼굴로 웃으면서 아무런 말 없이 5분간 레마를 쳐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빤히. 빠아아안히. 빠아아아아아아아안히.)

 


 

 

 


 

(뭔가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사방에 불이 꺼진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곳에 들어온 거다. 사방이 깜깜하다.)
(뻐끔. 뻐끔뻐끔.) 타이오렐. 타이오렐…? 장난이지. 진짜 들어온 건 아니지. (잠깐 정적) 라이오넬 오데사아아아아아아아!!!!!!! (외마디 비명처럼 질러댄다.)
(이 모든 일이 있기 전... 그러니까 아직 두 사람이 '방'에 있을 때.) (외마디 비명이 공간 안에서 메아리처럼 웅웅 울렸다. 레마가 아마도 '진짜 가만 안 둬!!!!!!' 같은 말을 소리쳤을 때쯤 어둠 속에서 수상한 발소리와 함께 등 뒤에 불쑥 나타났다.) 레마, 숙고의 시간은 좀 어떠셨나요. 지금 여기 안에서 우리는 1년을 보냈고 그 사이 탑은 무너졌답니다. (구라다.)
(소리가 있는 쪽으로 잽싸게 도망치다 벽에 부딪혀 거나하게 비틀거린다.) 아우…. 아야. (코를 만지작) 너! (아마 라이오넬이 없는 허공에 손가락을 가리키며) 날 아직도 순진한 고등학생이라 생각하면서 놀려 먹으려고 하는데! 장난치지 마! 나 진짜 *진지해!* …와중에 이렇게까지 어둡게 만들 수도 있는 거야? 싫다니까, 정말!
(그럼 막 웃다가 팟, 하는 명멸 효과와 함께 방 밖으로 내보내 줬다. 당연히 그 말이 있었지. *이제 내보내 줘.*) 밝게도 하고 어둡게도 할 수 있죠, 당연히.
(꽤 바보 같은 자세로 허공을 가리키고 있었다. 갑자기 밝아진 탓에 눈을 찡그리다가 얼굴이 벌개진 채로 노려본다. 얼굴로 "미워. 미워. 미워. 미워!!!"라고 말하고 있다.) 그 고약한 능력! (삿대질) 남 골탕 먹이기 딱 좋은 그 능력!! (나도 그렇지만!) 그건 자주 사용하면 패널티도 없대? 왜 B랭크인 거야?! 이거야말로 끔찍해서 F등급으로 등재하고 실생활 사용 금지로 여겨야 한다고!
패널티야 당연히 있죠. ('이건' 원래라면 *뭔가를 걱정해서라도* 안 하는 말이었는데, 그래서 정말 넌지시라도 말해본 적 없는 얘기였건만, 지금 라이오넬은 조금 이상하다. 아니지, 아주 *자연스럽다.* 고로 방금 대답은 단 한 번도 레마 앞에서 입 밖으로 낸 적 없는 어떤 사실에 대한 태연자약한 천명이다. 그게 무슨 뜻이냐면, 패널티, 그야 당연히 있지. 있는 걸 꼭 비밀로 해야 되나? 그럴 필요 없지 않나. 그냥 사실인데.)
(잠깐 멍청한 얼굴. 한 박자 대답이 늦었다.) 그래, 그… 고작 머리 아픈 거?
시간이 두 번 지나가는 거요. 말 안 했던가요?
(입을 달싹인다.) 두 번 지나간다니?
시간이 2배속이 되는 거라고 하는 게 더 나을까요. 정확히 얼마나 들어있는지 모를 불투명한 잔에서 물을 더 빠르게 따르는 거랑 비슷한데.
(이해까지 몇 초간의 침묵, 무언갈 깨달은 것처럼 동공이 수축된다.) 왜 이제 말해준 거야? 지금까지 얼마나 네가……. (몇 시간을 활용했을지 의미없는 계산이 짧게 지나갔다. 오히려 머리가 차가워진다.)
그야...... (왜 말 안 하고 있었더라? 기억이 안 나는군.) 별로 중요한 정보는 아니니까요? 그렇다고 안 쓸 것도 아니고.
몇 초가 되었든 네 수명으로 만들어진 곳이잖아! 알려줬더라면 거기에 바보 같이 틀어박혀 있지 않았을 거고! 맙소사, 나 지금까지 거기서……. (탈력감이 들어 입을 다문다.) 넌, 왜 그렇게… 무신경해?
뭘 그렇게까지. (손사래.) 걱정 마세요. 들여보내고 내보내는 것도 어차피 제 뜻인데요. 레마가 어떻게 더 하고 덜 한 것도 없어요. 마음이 좀 놓여요?
(고개를 젓는다. 오히려 더 걱정인 것처럼 가까이 다가가더니) 그럼… 오래 못 살고, 그런 거야? 그럴 수 있는 거야? 그것만 대답해 줘.
예, 뭐. 근데 이렇게 되고 나니 제가 이득 본 기분이 드네요?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순식간에 운명이 정해졌네. (거스를 수 없는 것처럼…. 왠지 모를 피로감이 서려 있다.) 네가 무슨 선택을 할 건지 알아. 남은 시간 동안 어쩔 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