𝘾𝙊𝙎𝙈𝙊𝙎 - 편지

 

답장은 이메일도 좋아.

 


 

 


 

방금 네가 보낸 거 아빠랑 점장님이랑 헥터, 킬리언, 제이크, 라일라, 또……-기타등등, 아무튼 라이오넬이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는 인물 이름-에게 전부 복사해서 보냈다가 무수한 사이버 불링을 받았어.
사이버 허깅이 아니고? 다들 크리쳐에 정신을 잠식당한 게 분명하군요.
다 너 때문이잖아! 애정이 듬뿍 담긴 편지는 고사하고 이런 거나 보내다니! 거기다 답장에 뭐라고 왔는지 알아? 어떻게 된 게 이 레파토리는 300년 동안 꾸준히 속는 놈이 있냬! 날. 완전히. 무시한 거야!
...진심으로 속았나요. (내면에서 레마에 대한 평가가 살짝. 수정됐다. 아주 살짝. 진짜 살짝.)
……이런 건 거짓말인 걸 알면서도, 속을 걸 알면서도, 뭔가 찜찜해져서 보내게 된단 말이야. (힝힝힝)
사실 그럴 것 알고 보낸 거긴 해요. 나의 이면처럼 잘 아는 사람을 놀려먹기라는 건 참 생산적인 취미네요. (얄밉)
최악! 못됐어! 너무해! 난 재밌는 노다지만 몇 만자는 써줬는데!
참, 그걸 방금 다 읽었어요. 그냥 읽으면 심심해서 진실과 거짓 가리기를 했답니다. 진실은 파란 펜으로, 거짓은 빨간 펜으로 밑줄 긋기. (형형색색 유니언 잭 색의 기이이이이이인 편지지 보여줌.) 정확도 점수 매겨보시겠어요?
(심통난 얼굴로 편지를 가만 쳐다본다. 쭉 영수증 읽듯이 내려가보면…) 잠깐! 내가 스칸디나비아 산맥에서 노르웨이 메탈밴드랑 냉수마찰을 즐겼다는 건 어떻게 맞춘 거야? 진짜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적었는데…!! (파랗게 칠한 문장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제가 레마의 이야기들에서 진실을 판별하는 기준이 있지요. 가장 평범한 게 거짓이며 가장 요상한 게 사실이라는...... (파란색 펜 꺼내 뚜껑 뽁. 뽑더니 레마 이마에 파란 펜으로 TRUE 써줌.)

 


 

 


 

오우……. 라이오넬, 넌 세상에서 제일 나쁜 마법사야. (굵은 목소리를 부러 내며) 잠깐. 근데 이게 틀렸다고? 케이프 타운에서 크리켓 경기는 분명 내가 이겼던 걸로 기억하는데……. (편지를 뚫어져라 본다.)
그거 해그리드 성대모사인가요. (손으로 0 만들어 보임. 빵점.) 사람의 기억이 완벽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재수 없는 미소.)
HAPPEE BIRTHDAE TIOREL 레터링 케이크가 있어야 날 인정해주겠니? (입술을 삐죽 내민다.) 으으으으으음. 으으응, 암만 생각해봐도 내가 맞는 것 같은데…. (종종 사람의 뇌는 본인 유리한 것만 기억한다고 하지….) 그래도 요건 맞았지? (어떤 도로에서 나누었던 두 개의 이야기. 문단을 손가락으로 건드린다.) 아직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전부 기억해.
레마한테 그런 레터링 케이크를 내놓으라고 하면 진짜 만들어 올 것 같아서 좀 무섭네요. (으으으음, 하는 동안 자기는 의미심장한 표정이나 지으면서 다른 데 봤다. 문단에 손이 가면 그제야 시선이 돌아간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그럼요. 이건 *중요하니까.*
부탁만 해주면 다음 밸런타인데이 때 정성스럽게 만들어줄게…. 분홍색 말고 하늘색으로! (문단 아래로 시선이 이어져 몇 초간 자신이 쓴 글에 시선을 붙박인다. 곧 천진한 웃음을 짓고선) 광장으로 나가볼래? 난 저렇게 활짝 개방된 시장만 봐도 그때 생각이 나. 케이프 타운 어른들은 나만 보면 과일 하나를 더 담아주려 했고…. 게다가 시장 바닥에선 네가 내 속도를 못 따라잡는 바람에 뙤약볕 아래에서 내 등만 졸졸 쫓았잖아! 그땐 슈퍼 파워도 없었는데 말이야!
왜 하늘색이죠. (따라서 시선이 움직이다가, 레마의 표정을 살피는 시간이 길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럴까요. 대신 여기선 *사람들*의 친절에 너무 감화되진 마세요. 우리의 사정이란 게 있으니까.
너랑 잘 어울리잖아. (다소 단순한 이유.) 허! 내가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무턱대고 마음을 내줄 것 같아? (먼저 성 바깥으로 향한다. 계단 난간을 타고 내려오는 둥 부산스러웠지만 그래도 정상속도임에 감사를 느끼길!) 물론 하인들은 다 착하더라……. 특히 내 개인실을 담당하는 하우스 메이드는 있지, 늦잠 자고 싶어서 커튼을 치고 묶어놨는데 그 매듭 위로 리본을 만들어줬더라구…….
그럼 좀 더 '파란'색으로. (와중에 주문하고 앉아있음.) 레마는 어딜 가나 무턱대고 마음을 내 주는 편 아닌가요. 단속도 안 통하는 무한 나눔의 집.
마음이란 건 나눌수록 커지고 풍요로워 지는 걸. 세상엔 너 같은 사람이 있으니, 나도 있어야 밸런스가 맞는 거지. (창가에 이마를 박는다. 입술이 댓 발 나와있다.) 연회 때문에 만들어둔 케이크 남는 거 없을까……?
언젠가 후회하고 마음의 문을 닫는 버전의 레마가 생겨나면 이것도 나름의 재미가... 농담입니다. (이마 박으려던 차에 창이랑 이마 사이에 손 대 줌.) 배 고파요?
너어… 내가 정말 잔인하고 마음도 없는 녀석이 되면 어떡할래?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이마에 익숙한 촉감에 고개를 슬쩍 라이오넬에게 돌린다.) 난 항상 남들보다 200% 움직이니까. (눈썹 끝을 축 내리며 자기 배를 둥그렇게 손으로 쓰다듬는다.) 주방에 가서 할 수만 있다면 미리 HBD, TIOREL 레터링 케이크도 만들면 좋지.
제가 후회할 일인가요, 그거. 남의 인생에 너무 간섭하고 싶진 않은데요. (손 천천히 뺐다.) 1000%가 아니고? 상당히 겸허한 수치로군요. 여기서 그럴 만한 재료가 나오려나.
너무해. 그거 결국 그럴 사람이 아닐 거란 확신에서 오는 자신감일걸. 분명. (메롱) 앞으로 1000%라고 하지, 뭐. (줏대 없다.) 체리 잼으로 안되려나…. 날카로운 도구로 어찌저찌 하면 될지도. (형편 없겠지만.) 근세 레터링 케이크 최초 발명!
세상 만사 어떻게 되든 좋다고 보는 편인데, 그래도 정말 '모든 게' 어찌되든 좋다고 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주면 좋겠군요. 그거 말고 다른 것 쓰면 안 돼요? 'RIP DRAGON' 같은 거. (너 싸이코패스야? 소리를 미리 방비하며 시선 피함)
(물끄러미 바라본다. 때때로 레마는 라이오넬을 오랫동안 지켜보다 눈을 가늘게 뜰 때가 많은데―남이 보기에 무례해 보일 정도로― 이 행동은 진실밖에 없는 라이오넬의 말에 없는 거짓말을 찾아내려는 습관이다.) 정말 살면서 한 번도 떼쓰고 싶은 적 없어? 결국엔 일어나고야 마는 좋지 않은 일에도 괜스레 감정적으로 굴고 싶지 않으냐고. (우악스레 주방으로 잡아끈다.) 싫어! 터무니 없게 희망찬 말로 적어둘 거야. 탑 탈출까지 D-3라든가. (괴롭히는 거임.)
(그러나 대답은 아주 *쿨하게*, 조금의 딜레이도 없이 나온다.) 아직까진. (그리고 이건 정말 현재적인 진실이다. *아직까지.*) 기왕 희망찰 거면 3...2...1...로 쓰시지 사흘은 또 뭔가요. (질질 끌려가며...) 맛은 어떻게 하시게요?
여지를 두는 걸 보니 진짜로군. (턱을 살짝 들어 보이며 한쪽 입꼬리를 위로 비튼다.) 3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숫자니까! 그리고 카운트다운은 너무 농담 같잖아. 사흘은 되어야 진짜 희망을 품을 수 있을 만한 시간 같고…. 무슨 맛이 좋아? 어차피 빵 위에다가 크림 얹고 토핑 얹는 게 다지만.
제 인생은 어차피 일어날 일들과 말려도 일어날 일들로 가득하거든요. (그게 그거란 뜻이다.) 진짜 희망을 위한 거였나, 그거. 그럼 버터 크림이 들어가면 좋겠어요.